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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240
한자 錦江里-西湖面-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금강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강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연표보기 - 전라남도 영암군 곤이종면 금강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영암군 곤이종면 금강리에서 서호면 금강리로 개편
마을 회관 금강리 회관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 531번지지도보기
공공 기관 영암군 보건소 금강 보건 진료소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 39-14번지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387,228㎡
가구수 83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여] 151명(남자 72명, 여자 79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명칭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금계(金鷄)라는 새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의 등성이와 뒤편으로는 영산강이 흐르고 있어 금강(錦江) 마을이라 칭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영산강 물이 비단처럼 맑고 깨끗해 금강(錦江)이라 칭했다는 설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곤이종면 금강리로 개설되었다. 이후 1930년 곤이종면이 서호면으로 이름을 바꿈에 따라 서호면 금강리가 되었다.

금강리의 입향은 전북 부안에 살던 최수강이 덕진면 영보 마을에 사는 숙부 최덕지를 만나기 위해 자주 왕래를 하다가 그의 부친인 최광지를 이곳에 정착시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수강과 최광지의 내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덕지가 1451년(문종 1)에 관직에서 물러나 영암에 정착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 무렵 이곳에 들어왔을 것이다. 현재도 전주 최씨 집성촌으로 많은 가구가 살고 있다.

[자연환경]

서쪽과 남쪽은 모재산 줄기의 산지로, 동쪽과 북쪽은 영암천학산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로 인해 금강리는 금계포란의 형국이라 하여 금곗등이라 불리기도 한다.

[현황]

서호면에 소속된 법정리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서호면 태백리, 남쪽은 서호면 성재리, 동쪽은 군서면 동호리, 북동쪽은 시종면 신학리에 접해 있다. 2013년 1월 기준 총면적은 538만 7228㎡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83세대, 151명(남자 72명, 여자 79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자연 마을은 금강 마을과 황촌 마을이 있다.밭이 58만 6000, 논이 45만 9000㎡, 임야가 168만 5000㎡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생산 작물은 쌀, 보리, 콩, 조이다. 특히 마을 전체가 무농약 친환경 단지를 조성하여 쌀농사를 짓고 있다.

2011년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에서 서호면 금강리를 잇는 길이 3.9㎞의 신금 대교가 준공되어, 광주광역시와 영암군, 목포시를 잇는 관문이 되었다.

주요 건물로는 금강리 회관, 영암군 보건소 금강 보건 진료소, 서호 북부 장로교회가 있다. 마을 앞 금호정 옆의 팽나무에서 매년 정월 14일 밤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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