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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 정사에서 한석봉을 길러 낸 어머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828
한자 竹林精舍-韓石峯-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집필자 정성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지명 「죽림 정사에서 한석봉을 길러 낸 어머니」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지도보기
성격 전설|교훈담|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어머니|한석봉|신희남
모티프 유형 홀어머니의 자식 뒷바라지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 오는 한석봉과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개설]

영암군에서는 석봉 한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죽림 정사에서 한석봉을 길러 낸 어머니」한석봉의 교육을 위해 영암에 온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팔며 아들을 뒷바라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7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발행한 『영암 한석봉 관련 유적 조사』와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의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영암군 덕진면영보리운암리에 사는 주민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참고하였다.

[내용]

한호(韓濩)[1543~1605]는 조선 시대의 서예가로 본관은 삼화(三和), 자는 경홍(景洪), 호는 석봉(石峯)·청사(淸沙)이다. 군수(郡守) 한대기(韓大基)의 5대손이자 정랑(正郞) 한세관(韓世寬)의 손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산이 풍비박산이 된 석봉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서경덕(徐敬德)의 소개로 영계(瀯溪) 신희남(愼喜男)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신희남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출신이다. 석봉은 12세부터 25세에 진사시에 합격할 때까지 신희남의 문하에 들어가 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석봉이 수학한 장소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석봉신희남에게 글을 배운 서당이 ‘차곡 들구실’에 있었다는데, 들구실은 영암읍 농덕리를 지칭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석봉이 공부한 서당이 죽림 정사라고 믿고 있다.

석봉신희남의 문하로 들어갈 때 석봉의 어머니도 영암으로 함께 갔다. 석봉의 어머니는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떡을 만들어 팔았는데 떡 장사를 했던 곳이 아천포 다릿거리 장터로 전해진다. 석봉아천포에서 30리[11.78㎞] 떨어진 서당으로 공부를 다니고 어머니는 매일 떡판을 이고 다릿거리 장터로 나갔다.

몸을 아끼지 않고 자식 교육에 힘쓴 어머니 덕분에 석봉은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글씨로 출세한 석봉은 사자관(寫字官)이 되어 국가의 여러 문서와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 문서를 도맡아 썼고, 중국에 사절이 갈 때도 서사관(書寫官)으로 파견되었다. 벼슬은 흡곡 현령(歙谷縣令)과 가평 군수(加平郡守)를 지냈다.

[모티프 분석]

「죽림 정사에서 한석봉을 길러 낸 어머니」의 기본 모티브는 ‘홀어머니의 자식 뒷바라지’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뒷바라지와 교육열로 인해 한석봉이 글씨로 이름이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참고문헌]
  • 『영암 한석봉 관련 유적 조사』 (영암군, 2007)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전화 인터뷰(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신내범, 남, 78세, 2013. 3. 11.)
  • 전화 인터뷰(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최연창, 남, 78세, 201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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