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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463
이칭/별칭 길고(桔橰),장병고(長柄槹),통두레,파래,품개,풍개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기구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낮은 곳의 물을 대량으로 퍼 올리는 데 쓰는 농기구

[개설]

용두레 는 괸 물을 옮기거나 낮은 곳에 있는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데 쓰는 농기구다. 수원(水源)에 기둥 셋을 엇 매겨 작사리[한끝을 엇걸어서 동여맨 작대기]를 지어서 묶어세우고 긴 배 모양처럼 된 용두레의 몸통을 중간을 매달아 그 한 끝을 쥐고 밀어서 물을 퍼 올리는 형태의 장치다.

용두레 에는 보통 30~40리터 정도의 물이 실리는데, 혼자서 1시간에 15~20톤의 물을 풀 수 있고 두세 사람이 교대해가면서 푸면 하루에 약 150톤 쯤 옮길 수 있었다. 흔히 논 한 귀퉁이에는 가뭄에 대비한 구덩이를 파고 물을 가두어 두는 것을 둠벙이라고 한다. 이 둠벙의 물은 어느 정도까지 용두레로 푸고 남은 것은 맞두레를 이용하여 퍼낸다.

[연원 및 변천]

지금처럼 양수기나 전기 모터펌프가 개발되어 보급되기 전까지는 얕은 곳의 물을 퍼 올리는 데에 맞두레를 비롯한 용두레, 무자위, 물풍구 등을 사용하고 깊은 곳은 두레를 이용했다. 이 가운데 용두레는 나무표주박이나 바가지를 개량한 형태의 것으로 여겨진다. 15~16세기의 문헌들에 여러 농기구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형태나 이름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현재의 용두레와 흡사한 최초의 기록은 1778년에 간행된 『북학의(北學議)』에 “물을 풀기 위해 바가지를 이용하는데, 바가지에 담긴 물이 그네 뛰는 모양 같고 극히 둔해서 우습다.”라고 적혀 있다. 이 밖에도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에는 용두레를 드레[汲器]라 표기하였고 『북학의』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는 길고(桔橰), 장병고(長柄槹)라 썼다. 용두레는 지방에 따라 통두레[전라남도 영광], 파래, 품개, 풍개라고도 부는데,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에서는 용두레라 불렀다.

[형태]

용두레 는 길이 1.5m 정도 되는 통나무를 배[船] 모양으로 길쭉하게 앞쪽은 넓고 깊게 파고, 뒤쪽은 좁고 얕게 파서 자루를 달거나 아예 자루까지 통째로 다듬어 몸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양쪽에 작은 구멍을 뚫어 가는 나무를 끼우고 여기에 끈을 매었다. 이 끈은 세 개의 긴 작대기를 원추형으로 모아 세운 꼭대기에 매어 몸통을 적당히 들어 올리도록 했다. 한편 몸통 끌에는 손잡이가 달려서 이것을 쥐고 앞뒤로 흔들며 물을 퍼 올리는데, 통나무가 귀한 곳에서는 쪽나무로 직사각형의 통을 짜고 바닥에 긴 자루를 달았다. 나무통 윗부분에는 들어온 물이 넘치지 않도록 드문드문 나무 조각을 가로 대고, 줄의 길이는 지형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용두레의 무게는 보통 7㎏ 내외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삼호읍 서호리에서는 1970년대 중후반까지 5월에서 8월 사이에 주로 가뭄이 들었을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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