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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곡리 백자 가마터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332
한자 葛谷里白瓷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한성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갈곡리 백자 가마터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지도보기
성격 백자 가마터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개설]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규제에도 불구하고 백자에 대한 요구는 대단히 높아 일반 사대부에게는 1616년(광해군 8) 이전부터 확대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기술이 확산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변천]

갈곡리(葛谷里) 백자(白瓷) 가마터는 태토 비짐를 받쳐 포개 굽고 있어 16~17세기에 운영되었던 백자 가마터로 판단된다. 백자 가마터가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위치]

갈곡리 백자 가마터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에서 종오 마을로 가는 소로 왼쪽 50m 지점에 있다. 마을 보건 지소에서 전면에 보이는 나지막한 구릉으로 가마터는 구릉을 개간한 민종식 소유의 밭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와 결과]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으며, 『고고학 지도』와 『영암군의 문화 유적』, 『영암군지』, 『문화 유적 분포 지도』 등의 문헌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현황]

밭을 개간하면서 훼손된 가마터의 흔적과 백자 조각, 도지미[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되는 받침] 등이 주위에 흩어져 있다. 한편 원갈곡 마을과 인접한 백학동에도 백자 가마터가 있었으나 농협 창고를 만들면서 파괴되어 2013년 현재는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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