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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46
한자 金炳昊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0년 11월 5일연표보기 - 김병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6년 - 김병호 조선 성악 연구회 직속 창극좌 단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김병호 임방울 창극단 단원으로 활약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김병호 인천 여자 고등학교에서 전통 음악 강사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61년 - 김병호 국립 국악원 국악사 양성소 등에서 후진 양성
몰년 시기/일시 1968년 8월연표보기 - 김병호 사망
묘소 김병호 묘소 -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용미리
성격 예술인
성별
본관 김해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출신의 국악인.

[개설]

김병호(金炳昊)[1910~1968]는 본관이 김해(金海)이고 호는 금암(錦巖)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서 김기봉과 박연례의 차남으로 태어나,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라는 독자적인 유파를 창시한 가야금 산조 명인이다.

[활동 사항]

김병호는 한학을 배우던 1915년 무렵에 같은 고향 사람인 김창조(金昌祖)[1856-1919]의 문하에서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김병호의 스승인 김창조는 1890년대 산조의 효시인 ‘가야금 산조’를 창제한 가야금의 명인이며, 가야금 외에도 거문고, 해금, 젓대, 아쟁 등에도 능통했다. 김창조의 가야금 산조는 안기옥, 한성기, 최옥삼, 김병호 등에게 전승되었다. 제자들이 각자의 음악성과 특색을 더하여 독자적인 유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현재는 여러 유파의 수많은 문하생들이 그 맥을 잇고 있다.

김병호김창조와 고향이 같아 음악의 사제 인연을 맺을 수 있었지만, 타고난 음악성과 총명함으로 스승의 가락을 이어받았다. 거기다 훗날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더하여 독특한 엇모리장단까지 짜 넣음으로써 현재 전하고 있는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를 완성하였다.

가야금 산조는 물론 판소리, 아쟁, 가야금 병창에도 능했던 김병호는 1936년 조선 성악 연구회 직속 창극좌의 단원으로 활동하였고, 1937년부터 1939년까지 근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이었던 임방울의 창극단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952년경에는 부산 동래 권번의 가야금 교사로 재직하였고, 1954년에는 임춘앵이 이끄는 여성 국극 동지회 악사로도 활동하였다. 김병호는 1959년부터 인천 여자 고등학교에서 전통 음악 강사로 재직하였으며, 1961년 이후에는 국립 국악원 국악사 양성소, 서울 대학교 등에서 연주 및 후진 양성에 전력하다가 1968년 8월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김병호의 유작 음반으로 1988년에 서울 음반에서 발매한 「김병호 가야금 산조」가 있다.

[묘소]

김병호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용미리 공원묘지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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