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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40
한자 鄭洛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정낙중 김태원 의병 부대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9년 2월 - 정낙중 박사화 의병 부대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9년 8월 - 정낙중 나성화 의병 부대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0년 1월 26일 - 정낙중 고등 법원에서 교수형을 언도받음
몰년 시기/일시 1910년 3월연표보기 - 정낙중 순국
추모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정낙중,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정낙중(鄭洛仲)[1884~1910]은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다. 1907년부터 김태원(金泰元)[일명 김준(金準)] 의병 부대, 박사화(朴士化) 의병 부대, 나성화(羅成化) 의병 부대 등에 참여하여 영암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으며, 일본군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정낙중은 1907년 김태원 의병 부대에 들어가 20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전라남도 각처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광주 어등산(魚登山) 전투에서 김태원 의병장이 전사하자, 1909년 2월 박사화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대일 항전을 계속하였다.

정낙중박사화 의병 부대 소속으로 1909년 6월 부대원들과 함께 나주군 욱곡면(郁谷面) 방축동(防築洞)에서 일본 헌병과 보조원 4명을 기습 공격하여, 헌병 한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보조원 한 명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웠다. 또한 1909년 7월에는 영암군 종남면(終南面) 화수동(花水洞)에서 친일 동장 김치수를 처단하였으며, 지도군(智島郡) 압해면(押海面)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전라남도 각지를 넘나들며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낙중은 1909년 8월부터 나성화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제4초 십장(什長)의 직임을 맡았으며, 군사들과 함께 전남 무안부(務安府) 삼향면(三鄕面)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주도적인 활동을 펼치다가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1910년 1월 26일 고등 법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었고, 1910년 3월에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낙중의 공훈을 기려 200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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