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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42
한자 文師古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문혜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문사고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01년연표보기 - 문사고 사망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남평

[정의]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남평(南平).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낸 문서(文敍)의 7세손이다.

[활동 사항]

문사고(文師古)[1637~1701]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기상이 있어서 이웃 고을에서도 큰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 아홉 살 때 아버지 상을 당해 슬퍼하는 예가 지극하여 몸에 뼈만 남을 정도가 되었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사고에게 고기와 맛난 음식을 권하였으나 눈물을 흘리며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한다. 문사고는 삼 년을 죽만 먹고 지냈지만 심한 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신명의 보호라고 하였다.

문사고가 16세에 어머니 상을 당하였는데, 아버지의 상을 치를 때와 똑같이 한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에도 어머니의 묘소 옆을 떠나지 않고 추모하며 애통해 했다. 또한 기제사(忌祭祀)가 돌아오면 제당을 깨끗이 청소하고 제수 준비에 힘을 쏟았으며, 매번 애끓게 울었다고 한다.

문사고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도 힘을 쏟아 예서를 강의하며 이를 바르게 실천하니 추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문사고와 동생인 문희고를 일러 대연(大連), 소연(少連)이라고 부르며 칭송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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