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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697
한자 靈巖道岬寺解脫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473년연표보기 - 영암 도갑사 해탈문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영암 도갑사 해탈문 국보 제5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암 도갑사 해탈문 국보 재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0년 - 영암 도갑사 해탈문 번와 및 지붕 일부 보수
현 소재지 영암 도갑사 해탈문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지도보기
성격 사찰 건축
양식 단층 맞배집|주심포식
관련 인물 신미(信眉)|수미(守眉)
크기(높이,길이,둘레) 3칸[정면]|2칸[측면]
소유자 도갑사
관리자 도갑사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도갑사의 정문.

[개설]

해탈문(解脫門)도갑사(道岬寺) 경내에 있는 일종의 상징적 통과문이다. 도갑사는 신라 말에 도선 국사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 말에 크게 번창하였던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도갑사 내 전각은 6·25 전쟁 때 대부분 소실이 되었으나 해탈문 만큼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불교에서 해탈(解脫)이란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로운 경계에 이르는 것을 뜻하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조선 시대 사찰에서는 절 앞쪽에 자그마한 해탈문을 건립하였다. 즉 일주문을 지나면 보통 해탈문이 보인다. 도갑사 해탈문은 1960년 해체 복원 시 ‘성화 구년 계사 오월 초 칠일 입주 상량(成化九年癸巳五月初七日立柱上樑)’이란 상량문이 나와 건립된 때가 1473년(성종 4)임이 밝혀졌고 당시 신미(信眉), 수미(守眉) 두 스님이 해탈문 건립을 주도하였다. 도갑사 해탈문은 2010년에 번와(飜瓦) 및 지붕을 일부 보수하였다.

[위치]

도갑사월출산 남쪽 기슭의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다. 해탈문은 사역 앞쪽에 위치하고, 해탈문과 같은 축선 상에 2012년에 복원된 광재루 및 장랑, 그리고 안쪽에 중층의 대웅전이 있다.

[형태]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이다. 중앙 칸은 통로로 되어 있고 양 협칸은 현재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안치되어 있으나 원래는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구조는 장대석 바른 층 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창방(昌枋)을 걸었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기둥 위에 얹어 놓은 부재(部材)]가 놓이고 2출목으로 된 공포(栱包)[전통 목조 건축에 쓰이는 조립 부분]를 올렸다.

가구(架構)는 전후 평주(平柱) 위에 대량(大樑)을 걸었으며, 그 끝은 외목도리[서까래를 얹기 위하여 기둥의 중심 선 바깥쪽에 걸치는 도리]를 받게 하였고, 대량 위에는 포대공(包臺工)을 놓아 주심 도리에서 오는 우미량(牛眉樑)을 얹고 또한 종량과 중도리를 받게 하였다. 종량 중앙에는 짧은 마루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게 하였으며 그 좌우로는 솟을 합장으로 결구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양 박공에는 풍판(風板)을 설치하였다.

[현황]

도갑사 경내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탈문을 거치게 되어 있다. 그동안 지속적인 보수와 관리로 건물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영암 도갑사 해탈문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한국 목조 건축의 구조적 특징이 여러 곳에 있는 귀중한 건물이다. 특히 2출목의 공포인데 형태상 1출목처럼 보이고, 또한 대량 위의 포대공 양식이 기둥머리의 공포와 전혀 달라서 마치 다포 양식의 공포처럼 된 점이 특이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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