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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리 고분군(1)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591
한자 內洞里古墳群-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장대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내동리 고분군(1), 7호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행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7년연표보기 - 내동리 고분군(1), 1~6호분 경희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행
소재지 내동리 고분군(1)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244번지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개설]

내동리(內洞里) 고분군내동리 쌍무덤과 함께 영암 지역 고대 문화를 대변하는 중요한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개의 봉분을 이룬 무덤들이 발굴 조사되었으며 무덤 내부에서 옹관을 주 묘제(墓制)로 한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영산강을 포함한 영암 지역은 이러한 봉분의 형태를 가진 무덤들이 산재하고 있는데 대부분 옹관 무덤과 관련되어 있다. 나주군 반남면을 제외한 옹관 무덤 조사는 모두 영암군 내동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유적은 영산강 유역의 독무덤 문화를 해명하는 척도가 된다. 무덤의 주인공은 백제의 호족 또는 마한 토착 세력의 수장으로 추정된다.

[위치]

내동리 고분군(1)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다. 원내동 성틀봉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이 두 갈래인데, 그 중 서쪽 구릉을 따라 내려오면 7기의 내동리 고분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60년에 국립 중앙 박물관에 의해 7호분이 발굴 조사되었고, 1967년 경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6호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7호분은 방대형으로 봉토에서 6기의 옹관과 1기의 움무덤[土壙墓]이 발견되었다. 6기의 옹관 중 1~4호관은 단옹식(單甕式)이고 1호관은 전용 옹관이다.

1호분은 2개의 항아리를 이음식으로 만든 독무덤으로 개간에 의해 파괴되고 하부의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 5호분은 한 봉토 내에 3개의 이음식 독널[合口式甕棺]과 하나의 파괴된 독무덤으로 이루어졌다. 1호관은 총 길이 3m, 너비 1.27m인 대형 독널로 그 안에서 인골, 긴 목 항아리[長頸壺] 및 길이 65㎝의 철검 한 자루가 출토되었다. 2호관 역시 대형 독널로, 안에서는 곱은옥[曲玉]과 대롱옥[管玉]이 발견되었고, 주변에서는 많은 토기가 채집되었다.

7호분은 한 봉토 내에 대형 및 소형의 독널 6개가 묻혀 있었다. 독널은 2~3개를 맞붙여 만든 이음식 독널이다. 이 독무덤들에서는 긴 목 항아리, 뚜껑 접시[蓋坏], 둥근 바닥 단지[小壺], 납작 바닥 단지, 짧은 목 단지[短頸壺], 벽옥제 대롱옥, 유리제 구슬[球玉], 토제 가락바퀴[土製紡錘車], 쇠못 등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 2호분·3호분·4호분·6호분은 이미 파괴되었다.

[형태]

1호분은 가장 큰 분구(墳丘)[봉분]를 가지고 있어 영산강 유역의 독무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봉분은 긴 타원형을 이루며, 봉토에 뚫려 있는 도굴 갱내에 옹관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3호분은 1호분 가까이 동쪽으로 있는데 1호분과 2호분에 비해 규모가 작다. 분구는 남북으로 약간 긴 타원형을 이루며, 정상부에 함몰된 부분이 있다.

[출토 유물]

1호분은 독널의 주변에서 큰 항아리[大壺], 짧은 목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5호분 1호관의 총 길이 3m, 너비 1.27m인 대형 독널 안에서 인골, 긴목 항아리 및 길이 65㎝의 철검 한 자루가 출토되었다. 7호분에서는 긴목 항아리, 뚜껑 접시, 둥근 바닥 단지, 납작 바닥 단지, 짧은 목단지, 벽옥제 대롱옥, 유리제 구슬, 토제 가락바퀴, 쇠못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발굴 조사된 이후 행정 당국의 유적에 대한 보존과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반적으로 독널은 처음에는 일상에 쓰이는 항아리로 만든 대용 독널(代用甕棺)이 사용되다가 뒤에는 널로 특별히 만든 대형의 전용 독널이 사용되었다.

내동리 고분군에서는 두 형식이 공존하고 있어 고분의 축조 기간이 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형 독널은 백제의 세력이 미치기 전 마한 여러 소국의 지배층에 의해 5~6세기경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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