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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44
한자 西倉
이칭/별칭 창말,창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서창 -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산183 일대지도보기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정부 세곡 창고.

[개설]

조선 시대 곤일종면 지역으로서 영암군의 서쪽에 창고가 있어 서창이라 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창고 조에 의하면, “서창은 영암에서 서쪽으로 40리[15.71㎞]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삼호읍 원서창 마을을 말한다. 서창 마을은 이칭 창말, 창촌이라고도 한다. 창고 터는 서창 마을의 북쪽, 즉 서창 포구의 건너 구릉 안산 마을에 있었으나 지금은 밭과 묘지, 대지로 전환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영암군 서쪽 지역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보관하여 흉년을 대비하는 진휼곡이나 봄철 식량이 부족한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빌려주고 가을철 수확 후 거두어들이는 환곡을 위한 창고다.

[관련 기록]

『여지도서(輿地圖書)』 창고 조, “서창은 군의 40리[[15.71㎞]]에 있다[西倉在郡四十里].”

『대동지지(大東地誌)』 창고 조, “서창은 서쪽 40리[[15.71㎞]]에 있다[西倉在西四十里]”.

[내용]

서창은 조선 시대 서호면, 학산면, 삼호읍 일대에서 거둔 정부의 세곡을 보관하였던 창고이다. 서창과 관련된 포구는 서쪽의 안산 동쪽에 있었다. 『1872년 지방 지도』에 의하면 기와집으로 그려져 있다. 현재 직강화된 망월천은 조선 시대에는 독천의 서쪽과 통하는 바다의 갯고랑이었는데 서창의 서쪽은 바다와 통했다. 바다 갯고랑은 안산[96m]의 동쪽을 돌아 흘러 갯고랑은 뱃길이 되었다. 서창의 포구에서 세곡을 싣고 영암의 망호리 해창에 이어서 군서 해창으로 세곡을 날랐다.

[변천]

서창의 창고는 1921년 개교한 서창 보통학교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나중에 일본인이 소유하여 창고로 이용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조세 제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초기 서창 초등학교의 전신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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