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42
한자 梨津鎭
이칭/별칭 배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변남주

[정의]

조선 시대 영암군에 속했던 현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있었던 수군 만호진.

[개설]

이진진(梨津鎭)은 지금은 해남군 북평면 지역이나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에 속한 지역에 있던 수군진이다. 지금의 해남군 남창인 달량에서 남쪽으로 800여m 떨어진 수군진이다. 이진진은 1555년(명종 10) 달량진 왜변 후인 1597년(선조 30) 종9품의 권관진이 설치되었다가 1627년(인조 5) 만호진으로 승격됐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달량진 왜변 이후 왜구로부터 해남 반도의 해안 방어를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수군진이다.

[관련 기록]

이진진에는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머문 적이 있다. 『난중일기』에 의하면 1596년 윤 8월 25일 “이진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곧 해남으로 간” 적이 있으며, 두 번째는 이순신 장군이 1597년 8월 19일 장흥 회령포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에게 12척의 배를 인계 받은 후 다음날 이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토사곽란 증세로 8월 24일까지 4일 동안 머무르면서 원기를 회복하여 어란진으로 출발한 곳이다.

[내용]

이진 마을은 배 모양 형국이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하늘에서 본 이진성의 전체 모양이 병선의 외곽선과 흡사하다. 현재 이진 수군진성과 서문의 옹성 등이 잘 보존되어 전한다. 특이하게도 이진 마을 담과 꽃밭에는 제주도의 현무암이 매우 많다. 제주도에서 돛단배를 타고 나올 때 배의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하여 현무암을 실고 나와서 이진에서 제주로 돌아 갈 때는 곡식을 실고 현무암은 바닷가에 버린 것들이다. 이를 통하여 조선 시대 이진과 제주 간의 활발한 교류를 알 수 있다.

[변천]

이진진은 1555년 달량진 왜변 후인 1597년 종9품의 권관진이 설치되었다가, 1627년 만호진으로 승격되었으며, 일본의 강압에 의해 1895년 폐진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해양 방어 체제와 이순신 장군의 정유재란 당시 행적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